새의 독백

이상윤

바람도 직사각형으로 불어들었어 새장 밖 하늘은 쇠창살이 그려진 푸른 도화지야 밤하늘을 울음소리로 건너는 새들의 대오(隊伍)도 빗물이 덧칠한 얼룩이지 난 점점 변해가고 있어 알람기능이 내장 된, 단단한 절망의 돌기들로 덮여진 로봇 새로 쇠창살의 두께를 가늠하던 부리엔 밤낮 기어나가려는 생을 풀칠하던 사료들이 자라고 있어 의도를 간파한 눈초리를 모조의 지저귐으로 받아내지 깃털이 뽑힌 날개는 엉성한 손가락으로 진화해 가고 있어 새장 속에 난 늘 부재중이야 머릿속엔 하늘 길에 대한 지도가 두 발의 잔 지문처럼 그어져 있어 어둠이 세상 틀의 경계를 잠으로 돌려보내면 난 흘러나와 나미비아의 등이 굽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를 바라보고, 킬리만자로의 초원에서 잠이 든 표범의 허름한 어깨를 쓰다듬고, 시베리아의 저녁 굴뚝에서 사각으로 접혀진 내 영혼이 아직도 흐르는 오로라의 강을 바라보곤 해 오늘도 밤을 틈타 비행 연습을 해 혹시, 정말 혹시, 올지도 모를 그 어떤 날의 딱 한 번의 우연을 위해

교환일기

박상수

눈을 떠도 또 한 겹의 눈이 닫혀 있는걸
나는 너의 팔짱을 낀다. 우린 지독한 교리문답에 너무 오래 시달렸잖니, 오늘은 조금만 사랑하자 네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너의 음성이 흉곽을 진동시키고 나는 조금 빨개진다 손풍금 주름처럼 펄럭이는 커튼, 커튼 뒤에 숨어서 나는 기댄다 언제까지 교과서 사이에 편지를 숨겨 읽어야 할까? 하지만 그건 너 자신을 너무 신성시하는 일
우린 지우개를 줍다 서로의 아랫도리 냄새를 맡았던 일에 대해 말한다 그래, 조금씩 더러워지는 일, 치맛자락에 묻어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일은 절대 만나지 말자 네 친구들이 머리칼을 당기고 지나갔어 가만히 걸어가는데도 평균대 밑으로 헛발을 짚는 기분, 우리들 볼펜은 너무 낡았고 이젠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도 없지만
깨진 병 조각이 아름다워 보여, 나는 걷고 있지만 또 날고 있는걸,
그래 미워하지 말자 너무 멋있다고 말해주지 말자 그렇지만 이 깨끗한 눈을 너와 나누어 먹고 싶어, 단지 그것뿐
네 이름표는 되돌려주고 싶지만 영원히 그러지 않기로 했어 나는 아직 찢어진 날개 같고, 돌아가봤자 씻고 잠든 척했다가 또다시 공원을 어슬렁거릴 텐데, 나는 껴안는다 비단보료 위에서 알몸으로 깨어난 우리, 아이들이 욕한다고 우리가 정말 아름다워지는 걸까? 응? 응?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

안희연

나는 핏기가 남아 있는 도마와 반대편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오늘은 발목이 부러진 새들을 주워 꽃다발을 만들었지요

벌겋고 물컹한 얼굴들
뻐끔거리는 이 어린 것들을 좀 보세요
은밀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나의 화분은 치사량의 그늘을 머금고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창밖엔 지겹도록 눈이 옵니다

나는 벽난로 속에 마른 장작을 넣다 말고
새하얀 몰락에 대해 생각해요
호수, 발자국, 목소리……
지붕 없는 것들은 모조리 파묻혔는데
장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담장이 필요한 걸까요
초대하지 않은 편지만이 문을 두드려요

빈 액자를 걸어두고 기다려보는 거예요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물고기의 비늘을 긁어 담아놓은 유리병 속에
새벽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별들은 밤새도록 곤두박질치는 장면을 상연 중입니다

무릎을 켜면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즈음엔
나는 샛노란 국자를 들고 죽은 새의 무덤을 휘젓고 있겠지요